미국을 방문하노라면 여러 자동차 판매자들(car dealers)이 함께 모여 있는 모올(mall)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수많은 차들이 매일같이 있고, 팔리고, 다시 새로 들어오지만 막상 나의 차는 없다. “수천대의 차들 중 하나만이라도, 둘도 아닌 단 하나의 차가 나의 차가 되어보았으면 . . .”하는 마음을 가지곤 한다. 그리고 언덕에 올라서서 아니면 동산에 올라서서 바라볼 때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수풀을 이루고 있다. 많은 건물과 집들 중에 진작 내가 거할 수 있는 단칸 방 하나가 없을 때 무엇이 생각이 날까? 정말 없는 것일까? 수개의 아파트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 중에 많이도 아니고 단 하나의 나의 아파트는 없을 수 있다. 서점에 가서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정말 사서 읽고 싶은 책들이 놓여 있다. 그 많은 책들 중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싶지만 재정적으로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아침이 되면 서울은 대단히 복잡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홍수처럼 전철과 버스를 타기 위해 이리로 저리로 몰려가고 몰려온다. 그리고 어느 시간이 지나면 거리는 다시금 한산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저 많은 사람들 모두가 아무런 걱정 없이 걸어가고 있고 어디론가 감당할 일을 향해 열심히 걷고 뛰기도 한다. 하지만 갈 수 있지만 오라고 하는 곳이 없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야가 되어 어디엔가 가서 기거해야만 하는데 오라는 곳도 없고 가야할 곳도 없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 쇼핑센터나 백화점을 방문하노라면, 정말 마음에 드는 여러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갖고 싶은 단 하나의 상품을 쉽게 구입하지 못할 때 어떤 마음이 들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라는 말을 기억한다. 못생기고 뭐하나 잘할 수 없는 생물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재주는 타고 난다. 하루살이로 살아가는 곤충이고 벌레라도 각자의 할 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본다. 이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쓸데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다. 소용없는 사람이라고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 지니고 있다.
심지어 쌍둥이로 태어나도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불과 몇 분의 시간 차이가 나지만 같은 배에서 수개월을 함께 지낸 쌍둥이지만 태어나고 나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여럿이 둔 부모가 워낙 가난하여 자녀를 남의 가정에 주기 위해 여러 명의 자녀들이 함께 잠자고 있는 가운데 하나를 골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지만 어느 자식하나 특유한 좋은 성품을 가지지 않은 자녀가 없었다고 한다. 미운 오리 같지만 하나를 두고 생각해보면 정말 귀하고 귀한 자녀들이다. 많은 손가락이 있는 듯싶지만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 비록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어도 한 나무, 한 가지, 한 잎이 귀하고 귀하다. 어느 하나 쓸데없는 것이 없다. 이 세상에는 정말 . . .
무엇인가 우리들은 각자가 특유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만의 모습과 특징을 갖고 태어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베푸신 특유한 재능이 있다. 각자의 손금이 다르듯, 각자의 얼굴의 모습이 다르듯, 각자의 성격이 다르듯, 우리들은 특유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태어났다. 한 사람들에게 주신 달란트가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특유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비천하고 힘든 인생이라 하더라도, 지체 높고 귀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각자에게 특유한 사랑을 베푸시고 재능을 주셨다. 그 재능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게 될 때 우리는 정말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 계신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반갑고 정답게 맞이하는 자녀나 가족이 있으면 다시금 힘이 생긴다. 비록 내일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도 힘이 생기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 죽을 정도의 지친 몸이라도 사랑하는 자를 위해 다시금 일어나 걸을 수 있다.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혹 있다 하더라도 지극히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신다. 그 주님을 우리는 믿는다. 그 안에 소망이 있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나를 위해 대언의 기도를 아끼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는다. 그 주님이 세상 끝날 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특유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우리는 살맛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비록 누구에게라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주님은 우리들에게 귀한 사랑을 여전히 베푸신다. 전과자인 자라도 주님만은 나를 여전히 사랑하신다. 모든 자가 나를 증오하고 힘들게 하더라도 주님만은 나를 여전히 함께 하신다.